[한국언론진흥재단 지원 기획기사-3]​ 하와이 이민, 미주 이민역사의 시작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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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스·미주 이민역사에 대한 이유있는 문제제기

"역사 바로잡기에 공소시효는 없다”

 

 

3. 하와이 이민, 미주 이민역사의 시작 맞나? 

 

[i뉴스넷] 최윤주 기자 editor@inews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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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스 한인 이민역사는 미국 전체의 이민 역사와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다. 미국에 한인들이 유입될 수 있었던 이민법의 변화 또한 미주한인 역사를 기술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보충설명이다.

사실 미국이 지금은 이민자의 나라로 불리지만, 제대로 이민 문호를 연 건 1965년으로 50년을 갓 넘겼을 뿐이다.

미국의 이민법 역사와 미주한인이민 역사 고찰이 향후 달라스 이민역사 산출에 기본 지식을 제공하는 중요한 근거와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i뉴스넷에서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지원 기획기사로 달라스 이민역사와 미주 한인 이민 역사를 살펴보며, 지금껏 간과해왔던 미주 이민역사 산출에 ‘이유있는 문제제기’를 내놓는다. <편집자 주>

 

 

  1. 한인 이민 역사와 미국 이민법 변화 (☜기사보기)
  2. 달라스 이민역사, 시작은 언제인가? (☜기사보기)
  3. 하와이 이민, 미주 이민역사의 시작 맞나? 

 

 

미국에 거주하는 대다수 이민자는 ‘비이민 비자’로 입국해 이민생활을 영위해가고 있다.

 

하와이에 도착한 최초의 한인들도 조선 입장에서 봤을 때만 합법적으로 보낸 이민자이지, 미국에서 볼 때는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할 ‘계약 노동자’일 뿐이었다.

 

당시 남북전쟁을 마친 당시 미국정부는 노예 매매와 반노예적인 계약 노동자 수입을 금지하고 있었다. 뱃삯과 숙박비, 입국 지참금 등을 농장주나 기업이 대주고 노동자를 수입하는 편법 또한 불법이었다.

그러나 값싼 인력이 필요했던 농장주는 법망을 피해 가난한 나라에서 노동자를 데려왔다. 태평양을 건너오는데 필요한 뱃삯은 농장주가 대줬고, 노동자들은 이를 갚기 위해 1-2년간 일을 해야 했다.

 

이에 대해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김도형 선임연구위원은 2013년 ‘초기 하와이 이민에 대한 재검토’라는 연구논문에서 “하와이 이민은 표면적으로는 '자유노동'이었지만 실제로는 전대금 제도에 의한 '계약 노동'의 형식을 띠고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같은 사실은 국가기록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1905년 일본의 제지로 미국으로의 한인 이민이 중단되기까지 총 7,226명의 한인들이 하와이에 도착하였다. 이들 중 84%는 20대의 젊은 남자들이었고 9% 가량만이 여성들이었으며 7% 가량이 어린이들이었다. 이러한 인구 구성에서도 볼 수 있듯이 초기 한인 이민자들은 빠른 시기에 큰 돈을 벌어서 자기 고향으로 금의환향하려는 임시체류자(sojourner)의 성격이 강했다. (국가기록원 ‘재외한인의 역사’중)

 

이민역사 산출에 있어 중요한 건 '체류신분'이 아니다. 일을 목적으로 한 계약노동이든, 공부를 위한 유학이든, 정치적인 망명이든 상관없다. 낯선 땅에 정착해 터전을 닦은 삶 자체가 역사이자 기록이다.

대한민국 정부를 비롯한 전 세계 국가가 재외국민이 소지한 비자종류에 상관없이 각 국에 정착해 살고 있는 사람을 통틀어 ‘이민자’로 분류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제연합(UN)이 이민을 ‘1년 이상 타국에 머무는 행위 또는 그 타국에 정착, 터를 잡고 살아가는 행위’라고 정의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풀이된다.

 

‘이민자의 나라’로 불리는 미국이 이민법 개정으로 제대로 이민문호를 연 건 지금으로부터 52년 전인 1965년이다.

 

합법적인 이민문호가 개방된 1965년 이전에는 이민문호가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다수의 한국인이 유학생 신분으로 미국에 들어왔다. 신분은 학생이었지만 사실상 이민자였다. 이들이 형성한 초기 이민사회가 각 도시 한인 이민역사에 머릿돌을 세웠다는 건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미주한인이민 역사, 1885년부터 시작

 

미주한인 이민 역사는 크게 네 시기로 구분한다. 달라스 이민역사는 세번째 시기부터 맥을 같이 한 후 네번째 시기에 가속도가 붙은 것으로 보인다.

 

첫번째 시기는 하와이 이민 전까지다.

 

초기 한인 이민역사는 갑신정변 직후인 1885년부터 1888년 사이에 집중된다.

당시의 정확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으나 1885년부터 1903년 하와이 이민 전까지 유학생, 외교관, 상인, 망명 정치인의 이름으로 미국땅을 밟은 사람은 50여명 정도로 추측된다.

유길준, 변수, 서재필을 비롯해 박에스더(김점동), 서광범, 박영호, 김규식, 백상규, 안창호, 윤치호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두번째 시기는 1903년 하와이 이민에서 시작해 1945년 일제 강점기가 끝나는 시기까지다.

 

유의영 교수가 쓴 ‘한인이민역사로 본 미국 속의 한인사회’ 논문에 따르면 하와이 이민이 시작된 후 1910년부터 1925년 사이 일명 ‘사진 신부(Picture bride)라는 이름으로 하와이에 시집온 한인 여성이 951명, 미국 본토로 온 여성은 115명이나 된다.

이들 외에도 6백명 가량의 상인, 정치난민, 유학생들이 1910년에서 1945년 사이에 미국에 도착했다. 이중에는 일본여권을 가지고 미국에 도착한 150명 가량의 유학생들도 있었다.

 

세번째 시기는 한국전쟁 이후인 1950년에서 미국 취업이민이 본격화 되기 전인 1965년까지다.

 

한국전쟁 이후부터 1965년 사이에 미국에 온 한인들은 전쟁고아 6천3백명, 미군과 결혼한 여성 6천 5백명, 유학생, 연구원, 간호사, 의사 등 6천여명 등이다. 유학생과 연구원들 중 상당 수가 공부와 훈련을 마치고 미국에 정착했다.

 

네번째 시기는 1965년 이후다.

 

1965년 미국 이민법이 대폭 개정되면서 한국인의 미국 이민은 불이 붙었다. 이 때부터 가속도가 붙은 미국 이민은 1987년 3만 8000명에 달한 후 감소했으나, 1998년 IMF와 2000년대 이후 기러기 가족 등 비이민 장기 체류자가 늘어나면서 지속적으로 팽창했다.

 

2017년 한국 외교 통상부가 집계한 ‘재외공관별 한인 인구 현황’에 따르면 미국 내 한인 인구는 250만 여명에 달한다. 미 연방정부가 추산하고 있는 한인 불법체류수 20만명을 합치면 대략 270만여명의 한인이 미국에 살고 있다.

 

하와이 이민, 미주한인 역사의 시초 맞나?

 

기술한 바와 같이 1903년 1월 13일 갤릭호가 하와이 땅에 도착하기 전 미국땅에는 수십명의 한인이 거주하고 있었다.

 

조선과 미국과의 외교관계는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에 의해 시작된다. 조선인과 미국인이 상호 자유롭게 각국을 방문하고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지만, 실제로는 미국이 조선 상권을 개척하기 위한 일방적인 협정이었다.

 

조약 체결에 의해 조선인이 최초로 미국땅을 밟은 건 이듬해인 1883년 7월이다. 민영익 전권대신의 주도로 조선 개화를 추구하는 신진세력 13명이 샌프란시스코에 상륙했다. 일명 미국 견학 사절단인 ‘조선 보빙사’다.

 

당시 사절단 중 한 명이었던 유길준은 이 방문에서  국비로 유학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매사추세츠에 소재한 사설 사관학교에 등록, ‘최초의 유학생’이 된다. 이후 1884년 12월 갑신정변이 일어난 후 국비지원이 끊어지자 학업을 중도 포기하고 귀국했다.

 

갑신정변은 미국 유학파를 낳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보빙사 일행 중 한 명이었던 변수는 갑신정변이 실패하자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했다.

1887년 메릴랜드 주립 농과대학에 입학한 변수는 4년 뒤인 1891년 6월 대학을 졸업,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미국대학 졸업장을 손에 쥐었다.

 

하와이 이민 이전 시기에 유학생활을 한 인물로는 서재필 박사가 대표적이다.

갑신정변 실패 후 1885년부터 미국에 체류했던 서재필 박사는 1890년 6월 10일 한국인 최초로 미국 시민권자가 됐고, 1892년 조지 워싱턴 대학에서 세균학을 전공해 한인 제1호 서양의학박사에 이름을 올렸다.

이승만 김규식 등도 서재필 박사의 설득과 권고로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이처럼 미주 한인 이민 역사는 하와이 이민 이전부터 존재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주한인 이민의 시초가 ‘하와이 이민’인 것처럼 굳어진 건, 하와이를 통해 이민 온 1세대들이 1903년 1월 13일을 ‘조상숭배의 날’로 기념해온 데서 기인한다.

 

때문에 미주 한인 이민역사 100년을 즈음해 ‘역사 재조명’ 바람이 거세게 일기도 했다.

미주한인 이민역사의 시작을 ‘하와이 이민’에 두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주장이다.

 

“미국 코리아 타운에서 벌어지고 있는 한인 이민사 100주년 기념행사는 2차 이민집단의 미국 하와이섬 도착일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1885년에 도착한 1차 이민자 집단을 한인 이민의 시초라고 하면 근대 한인이민 역사는 약 120년이 된다”(2003.11.5. 한국일보)

 

1885년부터 미국땅에서 활동한 학자들이 있고, 심지어 1890년 미국 시민권을 획득한 미주 한인 1호 서재필 박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주 이민 역사를 ‘1903년부터’라고 명명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다.

 

1903년 이전 조선인으로 미국으로 들어와 주류사회에서 업적을 세우고 한인 이민의 선각자가 되어 살아온 이민선배에 대한 재조명과 이민역사 재산출은 후대 이민자들이 풀어야 할 숙제다.

 

하와이 이민 전 미국땅에 살아왔던 선조들의 삶은, 한인 이민역사가 ‘1903년 이전부터 있어왔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지, ‘1903년 이전은 이민이 아니다’고 말하는 게 아님을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

 

없는 역사를 만들어내면 역사 조작이다. 있는 역사를 없다고 하면 역사 은폐다.

있는 역사를 있는 그대로 보는 자세, 지금 달라스와 미주 한인사회에 필요한 역사인식이다.

역사 바로 잡기에 공소시효가 없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한인사회의 책임있는 대응과 전문적인 역사고찰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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